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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의 미래적 발전을 위하여 

 

박준우/ 한국자원순환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먼저 칼럼을 통해서 신임 이사장 인사를 드린다. 30년 가까이 쓰레기 관련 일을 해 왔지만 이것이 저의 마지막 봉사고 역할이라는 생각으로 맡은 일을 해 나갈 생각이다. 할 수 있는 역할은 많지 않겠지만 회원님들을 도와 함께 어려운 일을 풀어나가고 우리 조합과 조합원의 발전을 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드리며 이 칼럼을 통하여 의견을 나누고 소통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오늘은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어 볼까 한다. 우리나라의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 혹은 EPR제도는 1990년 예치금 제도 도입부터 지금의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와 환경성 보장제도에 이르기까지 30년 가까이 우리나라 재활용산업 발전에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여 왔으며 재활용정책 혹은 자원순환정책의 중요한 정책수단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처음 예치금제도에 대한 연구를 맡았던 나는 연구보고서를 제출하면서 이 제도가 반드시 필요하고 발전되어야 할 제도이기는 하지만 한시적 정책이어야 한다는 의견을 덧붙였었다. 그것은 재활용이 우리 사회에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그것은 궁극적으로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정부주도로 언제까지나 이끌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처음 제도 도입의 시기에는 재활용산업의 기반이 취약하고 기업들이 영세하여 정부주도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지만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은 주변 환경을 오염시키는 불법적인 재활용 행위도 많이 근절되었고 기업 규모도 많이 커졌기 때문에 이제는 정부주도가 오히려 자율적인 산업발전에 장애가 되고 있다는 생각도 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재활용산업의 수익구조가 안정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여전히 사회적 지원이나 보조가 없이는 재활용산업은 수익을 낼 수가 없고 자생적으로 기업 활동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그래서 재활용산업에 대한 사회적 지원체제는 여전히 필요하지만 그 지원형태는 지금의 정부 주도가 아닌 사회적 자율체제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제도 개선은 생산자가 재활용책임을 나누는 공유책임제도를 그대로 유지한다는 점에서 EPR의 기본정신을 가지고 있지만 역할 분담을 보다 시장 자율적으로 전환한다는 측면에서 Post EPR로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의 발전은 공유책임제도 내에서의 각 주체의 역할을 보다 분명히 하는 것으로 시작되어야 한다. 전통적으로 폐기물의 수거 처리책임은 지방정부에 있어 왔으나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의 시행과 함께 지방정부의 책임과 역할이 소비자와 생산자 그리고 정부로 나누어졌다. 그러나 이 역할분담이 당초 의도하였던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발전되어 갔다. 역할분담이 기능이 아닌 폐기물 종류에 따라 나누어졌기 때문이다. 즉 EPR제도 대상 폐기물은 수집과 재활용의 전 과정이 생산자의 책임이 되었고 나머지 폐기물은 지자체 책임으로 되면서 중앙정부의 역할은 생산자에 대한 형식적 관리와 재활용사업자에 대한 간접적 지원에 머무르게 되었다. 

 

이러한 잘못된 역할분담은 제도의 건전한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데, 그 첫째는 생산자가 재활용 촉진을 위한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생산자는 재활용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재질구조개선이나 역회수 물류체계의 구축, 재생원료의 사용에 여전히 소극적이며 이에 대한 정부대책은 선언적 촉진이나 효과가 별로 없어 보이는 몇가지 유인제도 시행 외에는 별로 없는 실정이다. 

 

둘째로는 재활용산업의 생산자에 대한 의존이 산업의 자율적 발전을 저해하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재활용산업의 수익이 전적으로 생산자의 분담금에 의존하다보니 자생적 수익발생이 취약해지고 생산자를 대변하는 조합의 지원금 배분을 통한 시장지배가 나타나게 되었다. 그것은 정부주도라고는 하지만 재활용사업자에 대한 지원을 생산자에 맡긴 정부의 소극적 역할 수행에도 원인이 있다. 분리배출제도 같은 간접적인 지원정책은 있으나 정부의 직접적인 정책은 별로 없었고 분리배출제도도 소비자에 전적으로 의존한 결과 정부의 역할은 별로 크게 보이지 않고 있다. 

 

셋째는 공정경쟁 여건의 상실과 소수독점의 문제다. 2015년 들어 공제조합의 통폐합과 유통지원센터의 건립으로 재활용사업자의 지위가 향상되었다고 하지만 이는 정책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소수의 기업에 한정되고 다수의 재활용사업자는 소외된 체 여전히 생산자 우위의 시장에서 한계상황에 몰리고 있다. 우리보다 제도를 먼저 시작한 유럽이 독점체제에서 경쟁체제로 간 것과는 반대로 우리는 포장재 조합의 통합과 단일 조합체제의 유지로 공정한 경쟁을 통한 자율성장과는 거리가 먼 한정된 지원금을 두고 제로섬 게임을 벌리는 양상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하루빨리 해결하고 우리의 재활용산업을 올바른 방향으로 성장,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혁신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혁신은 먼저 공유책임 제도 내에서의 역할분담 재정립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생산자는 경제흐름의 상류부분인 생산과정에서의 재활용 촉진을 위한 기능에 충실하고 지방정부는 수집기능을 활성화함으로서 양질의 폐기물 원료를 적정가격으로 공급하는데 집중하게 하여야 한다. 그리고 중앙정부는 지방정부를 도와 수집 인프라를 구축하고 재활용산업의 모든 단계에 걸쳐 적정 지원이 이루어지도록 제도와 정책을 정비하는 일이 필요하다. 제대로 작동하는 지원체제 속에서 재활용사업자는 건전한 경쟁을 통해 기업규모도 키우고 경영을 근대화하며 기술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생산자에게 부과하고 있는 물리적 재활용 책임을 재정적 책임으로 바꾸는 일이 필요하다. 생산자에게 재활용의 사회적 비용에 해당하는 재활용 목적세를 부과하는 것이다. 세금으로의 전환에는 몇 가지 전제조건이 따라야 한다. 

 

1. 세금의 형평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현행의 기업규모나 사용량에 따른 감면제도는 폐지하고 모든 생산자를 납세의무자로 하여야 한다. 
 

2. 생산자의 범위를 포장재 이용자에서 포장재 생산자, 유통업자, 이용자로 확대하되 세율은 부가가치세와 마찬가지로 최종합계가 목표비율이 되도록 중간단계별 환급제도를 도입하여 세금 부담의 시장 기구를 통한 재분배가 이루어지도록 한다.   
 

3. 생산자의 역회수, 자체재활용, 재생원료 구입, 재활용용이 상품개발과 재질 구조 개선에 대해서는 세금 감면이나 환불을 통하여 유인책을 제공한다. 

다음으로 정부의 역할과 책임을 재정립하는 일이다. EPR대상 폐기물을 포함한 모든 폐기물의 수집은 지자체의 책임으로 하고 정부는 지자체의 수집기능 확대와 필요한 인프라 구축을 지원한다. 

 

 

마지막으로 재활용산업 지원방식의 개선이 뒤따라야 한다. 

 

1. 정부는 재활용세 수입을 바탕으로 기반구축사업을 지속하여 나간다. 필요한 기반사업의 선정과정에 재활용사업자를 포함시켜 재활용 사업자들이 필요로 하는 시설부터 확충하여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기술개발사업도 현장에서 재활용사업자들이 필요로 하는 실질적인 기술개발의 비중을 늘려가도록 재활용사업자의 의견을 반영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2. 재활용 사업 활동에 대한 지원은 회수와 운송, 재생공정의 전반으로 그 범위를 확대하되 표준지원기준을 정하고 표준보다 비용여건이 불리한 기업체가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도태되게 하여 적정 기업수를 유지하여 과당경쟁을 지양하도록 한다. (기업 간의 공정경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조합이나 유통지원센터에 의한 지원대상의 제한을 없애고 지원표준화와 재활용 시설 허가/신고제도 강화와 불법, 부적정  재활용/처리에 대한 관리 감독 강화를 통하여 재활용 시설의 자율적 발전을 유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3. 수집품에 대한 등급별 지원차등은 폐지하여 시장에서 거래되는 가격을 통하여 자율적으로 고품위를 선호하는 방향으로 수집시장이 옮겨가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4. 재활용사업자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는 행정(실적 조사, 올바로나 에코아스 시스템 입력 등 자료업무, 기타 과도한 행정규제 등)에 대한 점검을 통하여 꼭 필요하지 않은 행정은 과감히 폐지하고 업계 자율적 관리로 이관해나가야 한다. 

 

5. 분리배출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와 개선이 필요하다. 급격하게 바뀌고 있는 개인주의적이고 편의 추구의 가치관과 거주형태, 취락구조의 변화를 감안하여 현재처럼 소비자에게 과다한 부담을 주는 분리배출의 종류를 과감히 축소하여 소비자가 준수할 수 있는 분리배출제도를 정착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선별시설과 인력을 확충하여 각자의 전문적인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보다 현대적인 경제발전 틀과 맞는 일이다.

 

지금은 21세기다. 제도가 처음 도입될 시기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을 정도로 기술적 경제적 발전이 우리사회와 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러한 변화에 맞춰 정책도 변하여야 한다. 그간 정부는 여건변화에 맞추어 제도를 계속하여 개선 발전시켜 왔지만 이제는 보다 근본적인 질적 발전이 이루어져야 할 시기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 단독의 혹은 몇몇 이해관계자에 의한 정책 개선이 아니라 소비자, 생산자, 재활용사업자, 정부의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짜 내는 열린 정책형성의 과정도 필요하다.

 

 

 

지난 2월 23일 한국자원순환사회적협동조합 정기총회에서 신임 이사장으로 선임된 박준우 상명대 명예교수는 오랫동안 폐기물 분야를 연구하였으며, 현재 자원순환사회연대 공동대표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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